2023 년 12월 13 일 한국일보 서평

        

        우리 내외는 1962 5 6 일에 결혼하여, 2022 년에 결혼 60 년을 맞이하게 된다. 그동안 즐겁고, 어렵고, 힘든 60 세월을 같이 보내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미안하고 고맙다” 생각이다.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렇게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85세를 맞아 지금 옛날을 되돌아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시골 방앗간 아들: 인동 장씨 태사공파 34 장손으로 1937년에 태어난 나는 귀하게 자랐지만,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 읍은 일제 강점기에 연초생산을 주로 하는 농촌이며 초등학교를 마치는 13세까지 세상 물정을 없는 시골 소년이었다.

     다행이, 초등학교를 마치고 우리 마을에서 유일하게 청주중학교에 입학이 되어 청주중학교를 다니면서 새로이 만나는 친구들을 조심스럽게 사귀면서, 생각지도 못한 넓은 세상 특히 미국의 실상을 동경하면서 나도 언젠가는 미국에 가서 공부도 하고 야망을 이루어보겠다는 신기루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학교를 시작하자마자 김일성의 남침으로 전쟁의 소용들이 속에서 44 킬로미터 거리인 음성과 청주를 왕래하면서 학교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특히 고등학교 2학년 시기에 나의 장래를 염려하고 밀어주는 할아버지가 승천하시니, 나의 어설픈 야망은 내가 이룰 없는 지경에 빠졌다. 더구나 나는 명의 동생이 태어나서, 아버님 혼자서 경영하는 정미소를 물려받아 동생들을 돌보는 역할을 해야 된다는 아버님의 의도를 있으니 대학도 청주에서 해야 되는 듯싶었다.

        사춘기 사랑: 우여곡절 끝에 나의 끈질긴 노력을 인정하여 서울의 고려대학교에 입학이 되고 다시 나의 미국 가는 꿈을 위하여 정진해야 된다는 결심이 섰다. 입학성적이 고려대학교 전체에서 번째였고 정경대학의 수석으로 안암동 고려대학교 캠퍼스에서 즐거운 시절도 잠깐, 생각지도 캠퍼스 여자 친구를 알게 되면서 청춘남녀의 사랑의 고통을 크게 겪었다.

    감성이 뛰어나고 성숙한 여인을 나는 사랑 능력이 부족하여 망설이는 사이에 나의 친구와 꽃피는 사랑을 하는 현실을 보아야했다. 가슴 아픈 현실에서 나는 남녀 친구를 탓하기 보다는 나의 불찰로 돌리고 내가 꿈꾸는 야망을 위하여 정진했지만, 불도 부쳐보지 못하고 사라진 나의 젊은 시절의 낭만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서글픈 실연으로, 후에도 다른 여성들, 특히 친구 여동생들의 끈질긴 애원도 모두 물리치고 4 만에 고대 졸업장과 복무를 무사히 맞추고 운이 좋아 국가 공무원이 것은 나의 할아버지의 철학을 이해하고 실천했다고 자부한다.

           상선약수: 나는 할아버지를 항상 생각한다. 나의 성장기에 가장 많은 가르침과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신 분이다. 지금의 나는 할아버지의 분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항상 말씀을 하셨다. 노자의 도덕경 8장의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구절 속에 인간의 수양의 근본에 대한 이치를 항상 최고의 () () 같다. () ()이니 ()처럼 세상을 살라고 하셨다.

     인생의 아름다운 삶은 ()처럼 사는 , 상선약수 (上善若水) 했다. 물은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겸손이 있고, 막히면 돌아 아는 지혜가 있다. 더럽고 구차한 곳도 마다치 않고 받아주는 포용력이 있으며, 어떤 그릇에나 담기는 융통성이 있다. 바위도 뚫는 끈기가 있다. 장엄한 폭포처럼 투신하는 용기도 있다. 순리와 다툼이 없고 결국 물은 흐르고 흘러 만물을 품어주는 바다에 이른다.

     정수유심(靜水流深), 고요한 물은 깊이 흐르고 심수무성 (深水無聲), 깊이 흐르는 물은 소리가 나지 않듯 고요함 속에 진리가 있는 것이다. 내가 바다를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끝없이 펼쳐지는 태평양 바다의 수평선 끝에 아물거리는 아지랑이 뒤엔 고향이 있고, 속에 선조의 삶이 도사리고 있다.

 사랑과 야망의 결혼: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가르침으로, 다시는 여성을 멀리하고 건실한 공무원으로 활약  하면서 나에게 분에 넘치는 결혼상대자를 모두 물리쳤다.  공무원으로 처음 시작한 시절에 대구에서 만난, 지금의 귀한 배우자와 아주 건실한 결혼식을 올리고 새로운 살림을 차린 것은 나의 신념으로 밀어붙인 착실한 출발이었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만나서 나는 자랑스럽게 나의 야망을 늘어놓았다. 청혼하는 총각들의 허망한 야망을 당신은 별로 믿지 않으면서도, 고맙게 받아드렸고, 때의 약속이 지금  60 년이 지나도록 지켜지고 있다.

     1962 년도 한국의 실정이 아주 어려운 사항에서 우리 내외는 당시 4 갑류 국가공무원으로 농촌진흥청 본관 같은 빌딩에서 나는 인사계에 그리고 당신은 생활개선과에 근무했지만, 사람의 봉급으로 넉넉하지 못한 어려운 신혼생활을 불평 없이 참아준 당신이 너무 고마웠으나, 번도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한 기억이 없다.

     어려운 신혼생활에서 혜경이와 철준이가 태어나고, 나는 미국 유학 간다고 헤매는데 번의 불평을 하지 않고, 우리 가정의 장래는 미국에 있다는 당시로서는 허망하게 보이는 계획을 불평 없이 인정 당신이 너무 고마웠었다.

     혜경이가 살이고 철준이가 살도 되기 전에 가족을 처갓집에 맡겨 놓고 부산에서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가버렸다. 나를 굳게 믿어 당신이 한도 없이 고마웠고 처갓집  장모님의 사랑을 하늘처럼 고마워  하면서도 깊은 고마움을 갚지 못했다. 당신의 믿음을 감사히 생각하며, 미국에서 생기는 어떠한 유혹도 물리치고 유학생으로서 어려운 고학생이지만 학업에 전념 있었던 것은 당신의 믿음이 뒷받침 했다. 고맙다.

       와이프 장학생: 1967 8 어느 , 서울에서 전보가 왔다. 당시 영국비행기인 BOAC 항공편으로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당신이 온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본래 여름방학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타호 호수는 샌프란시스코 인들의 카지노 유원지로서 자동차로 시간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비행장에 일지기 도착하여 알아보니 당신이 타고 와야 비행편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다시 타호 호수로 혼자 돌아가는 아쉽고 아픈 가슴을 달래며, 혼자서 소리높이 노래를 부르며 로키 산맥 꼭대기에 있는 타호호수를 향해 힘껏 달렸다.

     다시 나흘 후에 공항으로 가서 비행장에서 당신을 만났을 때의 우리의 기쁨은 엄청났다. 서로 부둥켜안고 즐거우면서도 대구에 두고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다시 시간의 아름다운 로키 산맥으로 올라가는 드라이브는 마치 2 신혼여행 같았지만, 힘들고 험난한 유학생 생활을 생각하면 걱정도 태산 같았다.

      타호 호수에서의 일주일 정도 남은 여름방학을 주변 관광도 처음으로 하면서 마치고 다시 오리곤 유진으로 오니 우리는 결혼한 대학원생 아파트를 분양받고, 단란한 고학생 살림을 시작했다.

      주변에 대만에서 유학 중국인 유학생 부부는 남자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자연과학 계통 박사학위를 하고 있었는데, 대만에서 방직공장을 하는 부유한 집안을 가지고 있었다. 마침 주변에 당신이 온다는 소식을 알고 바로 아이들을 보아달라고 약속이 되어 바로 시작 가을학기에 당신은 취업을 하게 되니 나는 그때부터 친구들이 와이프 장학생”으로 불렀다.

     마침 아이들이 대구에 두고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고 당신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으로 아이들 부모보다도 당신을 좋아해서 저의들 집으로 되려가려면 동안 몸부림치는 경우가 많았다. 후에 나는 2 언론학 학사를 마치고 로스앤젤레스로 떠날 중국인 아이들이 매달렸는데, 후에 그들 부모가 학위를 마치고 대만으로 가서 크게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다시 만나 적이 없다.

     우리의 번째 아이 유진이의 탄생으로 로스앤젤레스로 내려온 나는 다시 남가주 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언론학 석사과정을 시작하니 다시 와이프 장학생이 되었다. 내가 신문사에 근무하면서, 공부를 했으나 우리 부부의 제일 과제는 대구에 두고 아이들을 되려오는 것이며 아이들 비행기 값도 비싸지만 다섯 식구가 살아 생활비도 만만찮으니 당신은 다시 일을 시작했다. 나의 고마운 마음은 점점 깊어지고, 우리의 힘들지만 자랑스러운 2 만에 석사학위를 마치고 박사학위를 하려고 아이오와주 아이오와 시티로 옮기면서 우리가 그렇게 바라던 아이들이 오는 수속도 마쳤다.

        아이오와에서 박사학위를 시작하면서 부부가 살만한 조교 월급을 받았으나 이제 다섯 식구가 우리 살림의 엄청난 생활비 때문에 고마우나 부담스런 와이프 장학생 신세를 면하지 못했고, 박사학위를 마치고 미주리 대학교 교수로 부임 때까지 고생 당신에게 고마움을 기억하고 있다.

       자랑스러운 교수 부인:  미국대학의 조교수는 어느 대학이나 박봉에 혹사당하는 직업이다. 6 후에 까다로운 심사과정을 거쳐서 부교수 승진과 함께 테뉴어라고 하는 종신직 임명을 받는 것은 비율이 30% 되며, 명문대학의 경우는 하늘의 별을 따는 과정이다.

       박봉인 나의 급여에다가 박사과정을 하면서 학교로 부터 받은 빛도 있으니 당신은 편안한 교수부인이 수가 없었다. 다시 컴퓨터 데이터 처리 공부를 하고 보험회사에 직원으로 취직을 하니 우리가정의 생활은 학생시절 보다 별로 나아진 것이 없으나 내가 부교수로 제때에 승진하고 아이들이 공부를 하도록 당신이 크게 배려하니 나는 다시 고마웠다.

        무척 힘들지만 보험회사 직원으로 계속 근무하여 아이들이 모두 훌륭한 대학교를 다닐 때까지 보험회사 일을 계속하다가 내가 훌브라이트 선임교수로 고려대학교에 부임한 1987 년에 은퇴사임을 하니 10 이상 근무 경력으로 지금도 은퇴 연금을 받고 있다.

     1980 년부터 시작된 미주리 대학교의 외국인 연수 프로그램 주임교수로서, 중국의 언론인 연수를 시작으로 한국 언론인 연수를 맡으면서, 박사학위 지도 31 , 중에는 19 명의 한국인 박사를 지도하고 200 여명이 넘는 한국 언론인 연수를 담당하면서 들의 가족 특히 아이들을 보살피는 당신의 친절과 노력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들의 고마운 마음은 항상 나보다 당신에게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오는 언론인은 초창기에는 아이들 때문에 가족을 한국에 두고 왔지만 아이들 미국교육의 장점이 알려지면서 대부분의 언론인들이 가족과 함께 왔었다. 언론인들 중에는 미국 취재를 경험이 있지만, 그들 가족은 미국이 처음이고 더구나 언어도 통하지 않고, 미국 학교나 관습을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수시로 자문에 응해주고 도와주는 당신이 고마웠다.

     특히 추석, 추수감사절, 성탄절 같은 명절이나 주말에는 높은 언덕위에 있는 6 대지에 지하실을 가지고 있는 우리 집이 컬럼비아의 노래방이 되었다. 노래방 주인은 당신이었고 많은 도우미들은 언론인 부인들이었다. 자정이 넘도록 노래를 부르고, 미국생활의 즐겁고 어려운 사항들을 나누는 노래방 시간은 미국생활 공부 교실이 되기도 했다. 즐겨 마시던 Cutty Sark Scotch 덕분으로 언제나 놀자고 하는 남성들을 쫓아내는 노래방 주인은 언제나 절도가 있어서 반란이 거의 없는 당신의 지도력에 감사하기도 했다.

         라구나 우즈의 고위층:미국대학을 은퇴하고 다시 4 년을 고국의 아주대학교 석좌교수로 마치고 은퇴인으로서 지금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남쪽 라구나 우즈로 옮겼다. 실버타운이라고도 불리는 은퇴인 커뮤니티는 55 세가 되어야 입주 있으며, 평균 연령이 78 세이다.

        18 우리가 입주 했을 때는 한국인들이 100 정도였는데 지금은 2,000 정도가 된다고 한다. 한국인 수가 많아지면서 한국인의 성격과 위상이 변하면서 여성의 참여가 높아졌다.

        2004 우리가 입주하면서부터 나는 한인회장도 맡았고, 특히 이곳 주민 이사회의 이사로 출마하면서 당신은 다시 선거참모장으로 친구들을 모아서 도와주었다. 선거운동의 일부로서 나의 영문 자서전, Destiny of a Running Horse 출간하여 출판기념회를 갖았었다. 출판 기념회를 준비하던 당신과 당신의 친구 분들을 누구인가 “고위층”으로 부르기 시작 후부터는 칭호는 아직도 알려져 있다.

        곳에서는 한인들 대부분이 골프를  치는데, 일주일에 , , , 번을 치는 구릅에 참여하니 나는 다시 고맙다. 골프치고 나서 모이는 식사나 파티에 남편들까지 초청하는 이들 “고위층”의 명성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 고맙게 살아주며, 이제 결혼 60 주년을 맞는 시점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보 고마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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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America 여행 이야기

South America

여행 이야기

 

Prologue

1966년 오레곤 대학교에서 20세기 문학 과목을 공부할 때, 노벨 문학상을 탄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책을 열심히 읽었다. 스타인벡이 여행하며, 신문기사 처럼 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언젠가는 여러 지방을 여행하며, 보고 들은 이야기를 엮어 보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은퇴를 하고서야 실천에 옮기며 쓴 리포 트가 이 책이다.

은퇴인으로, 여행과 여행 이야기 쓰는 것 을 나의 천직으로 알고 있다. 여행은 은퇴인에게 활력소를 넣어준다. 그러나 여행에서 우리가 자연의 경이를 보았다는 사실만으로는 효과가 적다. 자연을 보고서 그 경험을 우리 삶과 연결 하려고 노력하는 데서 여행의 보람을 찾아야 한 다. 자연 속에서 한 사람의 존재가 무엇인가를 보 는 것은 우리를 항상 겸손의 경지로 몰고 가기도 한다.

여행을 하면서 배우는 것은 겸손한 마음과 세상만사를 즐겁게 보려는 노력이다. 나의 삶을 허무하고, 후회스럽고, 그리고 고통스럽게 생각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나이가 들면서 찾아 오는 지혜와 너그럽고 부드러운 마음의 안정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번 남미와 남극을 보는 37 일간의 여행 은 우리가 사는 빌리지의 24 가정이 함께 갔다. 우리는 2011 년에 태평양 쪽 남미를 여행하고 2014년에는 경이의 파나마 운하를 배를 타고 건 너 보았다. 그 당시 계획한 대서양 쪽 30일간 Star Princess 를 마치게 되니 우리 인생의 숙제 를 하나 더 마친 것이다.

20193Star Princess 선상에서

靑岩 張元鎬

 

Prologue

 

I was once told by my grandfather that my life’s destiny came under the sign of the “running horse,” and that destiny would one day carry me around the world. The Confucian source of that prophecy, The Book of Changes, considered one person’s lifespan to be sixty years. I’ve now surpassed that span by more than two decades, but my destiny keeps me running. Now, as a retiree, I’ve settled at Laguna Woods Village, in California, but I will continue to travel the world and search for renewed meaning in my life.

What meaning does my life hold for me now? I invite you to join me as I run to explore that question in the pages that follow.

 

 

 

 

Contents

 

Prologue

3

1

Rio de Janeiro, Brazil

5

2

Iguazu Falls

13

3

Buenos Aires, Brazil

21

4

Montevideo, Uruguay

31

5

Puerto Madryn, Argentina

39

6

Falkland Islands

45

7

Cape Horm, Argentina

51

8

Ushuaia, Argentina

57

9

Punta Arenas, Chile

61

10

Amalia Glacier, Chile

67

11

Puerto Montt, Chile

71

12

Santiago, Chile

77

13

La Serena, Chile

89

14

Piso, Peru

101

15

Lima, Peru

107

16

Equator Ceremony

119

17

Puntarenas, Costa Rica

125

18

San Juan Del Sur, Nicaragua

133

19

Puerto Vallarta, Mexico

139

20

Epilogue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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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에서



그리운 살구꽃 피는 내 고향!


나는 29 세에 태평양을 건너가서 미국에 주저앉아 반세기 이상을 살면서 꿈에도 그리는 나의 고향을 틈틈이 찾아다니면서 옛날을 회상하는 일기장을 모은 것이 이 책이다.


은퇴를 하고 나이가 늘면서도 고향에 돌아가서 살지 못하는 형편에 틈만 있으면 나는 고향 산천을 보면서 내가 살아 온 지난날을 회상하고 또 글로 남기고 싶었다.


고향을 찾는 나의 여행은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기회가 생길 때마다 아름다운 조국의 산천 계곡을 찾아다니려고 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 친척 그리고 귀한 친구들을 찾아보고 그 동안 다정하게 지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려고 한다.


지나고 보니, 나에게 중요한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니고 내 주변의 가족과 친지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허무한 내 인생의 참다운 보람을 찾으려고 한다.


책이 너무 커서 첨부를 못합니다. amazon.com 에서 ISBN # 978-1983479908 로 판매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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